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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회 여백의 길 걷기 제2코스 판정-낙양

https://youtu.be/2VGUXE9gr8g

눈보라가 휘날리던 제2코스 걷기


제2코스 판정길 후기(김덕일)

2022/12/17(토) 09:00-11:30

걷기 길동무 12명

 

눈과 바람과 추위가 시작되는 듯한 날이다. 어제처럼 일어나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여백의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한다. 한 4주 만에 참여한다. 지리과 답사, 월출산 드론 자원봉사단 해단식, 서울 전시회, 제주도 가족여행으로 여백의 길을 제 8, 9, 10, 1코스는 개인적으로 둘러보았을 뿐이다.

오랜만에 여백의 길에서 길동무들과 설렘 걷기를 한다. 먼저 광주 문예회관에서 8시에 길동무 한 분과 같이 호남고속도로를 지나 문수산 터널을 지나고 나니 눈이 그쳤다. 10분쯤 일찍 낙양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벌써 유자님이 계셨다. 잠깐이라도 설경을 드론으로 촬영하고 싶어서 간단하게 촬영을 마치고, 이곳은 종점이니 출발점으로 차를 나눠 타고 간다, 하늘에서 본 낙양마을의 기하학적 무늬는 말 그대로 조감도이다. 마을과 초지의 눈 그림, 오늘 걸어야 할 폭풍의 언덕 2 모두 새들은 항상 보는 인간의 흔적들일 것이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눈 모자 홍시는 유난하게도 붉어 보인다.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긴다. 정민호 작가의 차는 짧은 그 길에 눈이 쌓여 있어서 큰길로 돌아간다. 2, 3호 차가 따른다.

출발점 판정리(板井里) 앞에서 서로 인사를 하면서 출발을 한다.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판정리는 통시암, 널빤지로 통을 짠 우물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드리고, 여기에서 보는 삼태봉과 미륵봉 사이의 자작나무 숲에 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하고 겨울 길을 걷는다.

춥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하니 길동무님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12분이나 참여하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토끼몰이가 갑자기 생각나서 회상하면서 걷는다.

가축의 겨울 먹이 압축포장 사일리지가 10개, 그러면 못해도 60만 원이 길에 가지런히 있다. 추위를 피해 하얀 눈 배추는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고, 길동무의 발자국도 옹기종기, 선량 마을에서는 부지런한 이가 길에 가래질하여 눈을 두 줄로 치워 놓아 길동무는 그 길을 어김없이 그곳으로 걷는다. 수박과 무를 수확한 밭과 달맞이 꽃의 향기를 잊을 수 없는 길에서 돌아 바람을 뚫고 선량 고인돌에 이른다. 소나무와 바람을 친구 삼아 몇천 년을 지켜온 고인돌에서 기를 받고, 유 박사님의 걷기의 인문학 강좌를 듣고, 사진 한 장 남긴다. 내리막은 바람과 하얀 눈이 카펫으로 기다리고 있다. 바람 소리, 눈보라, 가끔 보여주는 햇살, 그 모든 것이 지나 놓고 보면 행복한 것일 거다. 누군가 말했다. 행복은 강도도 중요하지만 잦은 행복감의 빈도가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멀리 향산리 고인돌에서 바라본 산티아고 길, 길동무는 겨울바람과 눈으로 순례자가 되어있다. 아름다운 그 순례자를 놓칠 수 없어서 셔터를 눌러댄다. 이곳 향산리 고인돌의 친구는 지금 양파이다. 눈과 바람과 햇살로 겨울에 고인돌 친구와 양파는 자란다. 한그루의 소나무에 이정표가 되어 새들이 왔다 갔다 했을 것 같다. 바람의 길을 순례자는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능선을 내려와 바람맞이 아늑한 곳에 서면 순례자는 안도한다. 고창 농악 전수관을 보면서 계양마을에 접어든다.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야천(野泉:들에 있는 우물)을 유 박사님이 알려주셨다. 그래서 야천의 모습이 궁금한 나는 기록을 위해서 이미지로 남겨둔다. 우물의 깊이는 3m는 족히 되어 보인다. 맑은 물이다. 길을 걷다가 산골 소녀 순례자는 시엘로, 눈과 어우러진 천국의 계단을 올라 보신다.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의 기둥이 생각나는 이팝나무밭을 지나 계양마을 등진다. 고구마밭 주인집은 오래전 폐가가 되었고, 아름다운 마을 길을 따라 사내마을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으셔서 마을 회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정에서 간식 먹고 쉰다. 그런데 이제는 눈바람이 길동무를 재촉한다.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김영신 선생님의 문병란 시 낭송을 듣고, 답시로 유 박사님의 백석 시인의 시를 듣고 아쉬움을 달랜다.


사내리(沙乃里)는 새나리, 사내, 새내, 초래, 조비리(鳥飛里) 등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되기 전에는 불렸었다. 마을 지형이 새가 날아드는 형국이라 한다. 이곳 사내리 ‘당산’은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믿는 특정한 장소나 신성한 공간으로, 상징적인 의미로 돌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세워 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가족 형태의 당산으로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아들,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 당산이 남아 있다. 일반적인 당산과는 달리 이곳은 굉장히 드문 가족 형태의 당산이다. 마을 사람들이 돌보는 흔적이 남아 있고, 마을 입구는 아들 당산이, 논둑길에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 당산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당산을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길동무 일행은 어머니 당산과 함께 출석부를 남긴다.

사내리에서 기억에 남는 담쟁이 벽이 있다. 그곳에 눈과 발이 멈춰 선다. 담쟁이가 그려놓은 수묵화, 그리고 대문은 순수한 십자가가 걸려 있어 순례자들의 안녕을 빈다. 오늘의 폭풍의 언덕은 눈과 바람과 길, 안경을 닦을 시간이 없다. 세상이 하얗고 깜깜한 색이다. 손이 얼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기에 힘든 구간이다. 먼저 간 길동무님은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가시다가 돌아온다. 길은 걷는 순례자는 길을 걷는 속도보다는 길을 찾은 방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포동마을 바라보는 트리마켓은 그냥 갈 수 없게 만든다. 눈과 바람과 풍경을 준비한 여백의 길에서 누릴 수 있는 풍광은 호사다. 소나무에 하얀 줄 하나씩 긋고 그것을 바라보는 길동무들, 기념사진을 남긴다. 출석부도 남긴다. 왠지 여백의 길에 길동무가 그 여백의 누리고 채우는 느낌 질 울 수 없다.

부들이 많았다는 포동마을 우물 터를 지나 감나무밭의 폭풍의 언덕을 지난다. 장관이다. 순례자들은 각기 옷을 여미며 종점에 가까워진다. 이곳은 고구마, 무 수확을 마치고 휑하니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보는 노을과 방장산은 2코스 최고의 최애장소라고 단언한다. 폭풍의 언덕2를 지나 슬로모션으로 산골소녀와 음악소녀를 촬영하였다. 눈 멍을 때린다.

오늘도 행복한 걷기는 낙양마을에 도착한다.

낙양(洛陽)은 소라 모양을 닮은 형국이라고 하여 나형기(螺形基)라고 불렸다. 부르기 쉽게 냉기라고도 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합 때 낙양이라고 정해졌다. 이 마을 이장님에 의하며 마을 앞 당산나무 근처에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낙포라고도 했다고 한다.

오늘은 그 낙양에서 2코스 8.8km 행복한 걷기를 마무리한다. 모든 순례자, 길동무가 무사하게 온 것에 감사한 하루이다. 눈보라를 이긴 순례자들을 위해 대들보 메기탕을 먹고 헤어졌다. 메기탕과 시금치는 대들보와 동격이다. 더치페이로 먹고 부족한 금액은 오랜만에 참석한 길라잡이가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