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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길 제143회차 9-b코스 걷기

여백의길 143회차 영상입니다.


산정마을에 모여 상호간 인사, 준비운동, 평등, 평화, 자유롭게 산정을 출발하여 대산주민행정센터가 있는 梅花落地 형국의 매산마을, 일제 강점기 금융, 행정, 통신의 고창남부 중심지, 조선초 1400년경 광산김씨가 들어와 묵도리라 하였다가 지금의 매산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마을 앞에는 화순오씨 가문으로 출가한 오이화의 처 완산이씨의 효열을 기리는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마을회관 앞 새로 심어진 느티나무 당산이 있었다.

여느 마을 처럼 한국전쟁 당시 좌우익의 대결의 상흔이 남아 있다. 


70년대초 대대적인 야산 개발로 마을의 비보 숲이 사라지고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교동마을 

조선 선조말 광산김씨가 터를 이루어 달골(月谷)이라 불렀고, 방죽이 있어 방죽안이라고도 했다 한다. 


1914행정구역 개편시 방죽에 나무다리를 걸쳐 놓고 다녔다고 하여 교동(橋洞)으로 바꾸어 불렀다. 


마을에는 1958년에 광산김씨 종친이 세운 화동서원이 있어 전통문화예절을 준수해온 마을이다. 

물론 화동서원은 광산김씨 사우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마을은 풍수형국에 따라 집들은 동남향 또는 남향으로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한다. 


화동서원 옆 광산김공오행묘비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하나 남기고 


마을 앞에 송고김선생유허비 옆을 지나쳐 길을 걸었다. 


찬 바람을 더해가며 덕천마을에 이른다. 덕천은 옛날 와탄천과 대산천을 따라 조수가 드나들던 마을이어서 앞내를 비천(飛川)이라 불렀다.  비천은 순수한 우리말로 비내, 비린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덕천(德川)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른다. 덕천에 1957년에 덕천교는 지금은 한쪽에 얌전하게 있다. 


덕천마을 우백호위에 덕천교회가 있고, 그아래 마을 숲정이, 지금은 당산인 왕버들나무와 수구막이 덕천동비가 남아 있었다. 우백호는 마을의  水口에 해당하기에 수구막이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모퉁이를 돌아 백운동에 들어 선다. 조선 인조때 경주김씨가 설기하고 마을의 형국이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하여 백운촌(白雲村)이라하였다고 한다. 


구름이 쉬어간다는 백운카페에서 길동무는 호사를 누리다, 마음씨 좋은 쥔장을 만나 맛난 빵과 스프까지 대접 받고 바람을 친구 삼아 산정까지 걷고 걷는다. 

 바람으로 몸이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걷기 였다.

함께 하신 10분의 길동무께 감사를 드립니다.  매산,교동,덕천 마을사는 (사)고창문화연구회 고창의 마을 13,14집을 참고하였고, 제 생각을 맞춰 보았습니다. 마을 자료를 주신 이병렬 박사님께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