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방송관련 PD들의 눈에 책은 하나의 콘텐츠였다.
PD들의 요청에 의해 몇 편의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으니 말이다.
걷기를 말하지만 단순히 걷기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6개월 동안 걷지도 서지도 못했다고 한다.
스물두 살 때 80일 동안 전국곳곳을 3,000km를 무전여행을 하면서 걷기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걷기 방법이 아닌 걷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삶의 적용이다.
‘걷는다’라는 의미, 단순히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한 걸음’의 의미, 역시 한 발자국의 보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 곧 인생에 관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걷기의 힘은 ‘아무리 급해도 한 걸음이고 아무리 여유로워도 한걸음이다.
이 한 걸음의 미학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인생은 한 걸음씩 걷는 생의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빛깔이다.
저자는 ‘걷기를 통해 한 걸음의 힘을 알게 된 사람은 쉽게 성취하려는 욕심을 갖지 않으며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한다.
즉 걷기가 삶의 철학이고 치유의 수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의심 없이 걸어온 걸음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무모해 보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것 같아 보이는 일을 벌써 오랫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하려는 것은...’
저자의 고백이다. 정말이지 그의 고백대로 아직까지 저자처럼 걷기를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저자는 걷기에 대하여 인류가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의심을 했다.
저자는 강력하게 주문한다.
‘무의식의 행위인 걷기, 자기주도적 걷기로 의식의 행위가 되게 하라.’고.
걷기가 의식의 행위가 될 때 신체적 효과가 극대화됨은 물론 정신적 영역으로 효과가 확대되며 비로소 인문학적 사유가 가능한 걷기가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대인의 삶이 메말라가는 이유를 ‘사유(思惟)의 부재(不在)’라고 말하며 일상적인 걷기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깊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아직 걷지 않았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걷기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수정되어야만 할 것 같다.
(책, ‘당신은 아직 걷지 않았다’중에서)
걷기 여행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산책하듯 짧고 가볍게 하는 여행과 구도자처럼 장고(長考)를 위한 길고 다소 부담을 가지고 하는 여행이 있다.
어떤 여행이라도 좋지만 나는 가급적 후자의 여행을 권한다. 아니 한 번쯤 길 위에 나그네처럼 홀로 서 보기를 권한다.
길을 걸었던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길은 살아있었다.
내가 길 위를 걷기도 했지만 내가 힘들어할 땐 길이 나를 이끌어 갔다. 아무리 힘들어도 멈추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위하여 길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길 위에 서 있는 동안 길과 나는 하나였다. 누구든 길 위에 서면 길도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 움직일 것이다.
수년 전부터 걷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올레길이나 둘레길 같은 스토리와 테마가 있는 길들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금도 아름다움과 편의시설을 갖춘 친절한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걷기 길’에 대한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는 오래전부터 걷기여행에 적합한 길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름난 걷기 길들이 내 눈에 덜 아름다워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길들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길은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길은 걸어가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구경의 대상이 아니다.
길 자체가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걷는 행위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아름다움을 소유한 길은 장고하기에는 부적합한 길이다.
여행자가 걸어가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라야 좋은 길이다.
걷기 길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 만큼 아름다움에 목마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걷기 길의 코스도 그렇다.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름지기 길이란 시작점도 끝나는 점도 누군가에 의해 임의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걷는 사람이 시작이라고 여기는 그곳이 시작점이 되어야 하고 끝이라고 여기는 그곳이 끝나는 지점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여기가 시작점이니 여기서부터 시작하시오. 그리고 여기가 끝이니 여기서는 반드시 마치시오.’ 또 ‘이리로 가시오. 저리로만 가시오.’라고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특히, 자신을 위한 걷기여행은 자신이 시작하고 싶은 곳에서 시작하고 걷고 싶은 만큼 걷다가 마치고 싶은 곳에서 마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걷기여행은 그렇게 자유롭게 자신이 완성해야 한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자신이 살아야 하고 완성해야 하는 것처럼 인생의 축소판과도 같은 걷기여행도 이와 같아야 한다. 걷기 길만큼은 걷는 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봤을 때 내가 찾은 걷기 길은 의미가 있다.
그토록 찾던 길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내가 평소에 ‘이런 길이 있었으면’하고 생각하던 길이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끝도 없이 넓은 황토밭 사이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크고 작은 길. 무미건조해 보이는 멋없는 길. 비로소 찾은 걷기 길의 모양이 그랬다. 자기를 찾아 길을 걷는 것이 목적인 여행자에게 길은 이래야 한다. 나는 그 길을 ‘여백(餘白)의 길’이라고 불렀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내면의 성공’을 경험하기를 염원하며 별칭으로 지역 명의 앞글자를 따서 ‘성공무대 길’이라고도 했다.
‘여백의 길’이 자기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는 걷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을만한 어떤 멋스러움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어떤 편리성도 갖추지 않고 있어 걷는 이의 걸음과 하던 생각을 중단시키는 무례한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길은 길대로 존재하고 걷는 사람은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길이다. 기회가 된다면 독자들과 함께 ‘여백의 길’을 채우고 싶다.
가볍게 걷고 싶다면 아름다운 길을 걸어라.
그러나 내면을 살찌게 하는 걷기여행을 하고 싶다면 매력 없는 거친 길을 걸어보라.
(책, ‘당신은 아직 걷지 않았다’중에서)